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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이 쌓일 때, 마음은 조금씩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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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이 쌓일 때, 마음은 조금씩 움직입니다 블로그 커버

치료실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뇌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면 많은 것이 선명해지는 듯합니다. 신경가소성, 피질과 변연계, 거울뉴런 같은 용어는 마음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관점을 건넵니다. 동시에 저는 이 용어들이 한 사람의 경험을 얼마나 충실하게 담아낼 수 있는지도 함께 생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Bruno Faustino가 2022년에 발표한 논문 Minding my brain: Fourteen neuroscience-based principles to enhance psychotherapy responsiveness를 살펴봅니다. 저자는 여러 신경과학 연구를 심리치료와 연결해 열네 가지 뇌 기반 원리를 제안합니다.

이 글은 논문의 공개 초록과 서지정보, 논문을 다룬 강의자료에서 확인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논문에서 제안한 관점과 미술치료사로서 제가 이어 간 생각을 구분해 전합니다.

논문이 말하는 것: 치료는 한 사람에게 맞추어 움직입니다

Faustino는 심리치료에서 ‘반응성(responsiveness)’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치료자는 한 사람의 동기와 선호, 대처 방식, 신경행동적 양식과 정서적 필요를 살피며 개입을 조정합니다. 논문은 이를 돕기 위해 현대 신경과학의 발견을 열네 가지 이론적 원리로 번역합니다.

이 논문은 특정 치료법의 효과를 검증한 임상시험이나 체계적 문헌고찰보다 이론적·초이론적 리뷰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열네 가지 원리는 임상에서 그대로 적용하는 처방보다 치료 장면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 관점으로 읽는 편이 적절합니다.

안전한 관계가 탐색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듭니다

강의자료에서 제가 먼저 눈여겨본 주제는 애착과 안전한 치료관계였습니다. 위협을 크게 느끼는 순간에는 몸과 마음이 자신을 보호하는 데 많은 힘을 씁니다. 안정된 관계 안에서 각성 수준이 조절되면 자신의 경험을 바라보고 새로운 선택을 시도할 여지가 조금씩 생깁니다.

미술치료에서도 안전은 표현의 바탕이 됩니다. 치료사는 참여자가 지금 표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어떤 거리와 속도가 편안한지, 미술 매체의 감각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살핍니다. 연필의 단단함이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날이 있고, 물감의 흐름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날도 있습니다. 같은 매체도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경험됩니다.

미술 매체는 여러분의 미술 표현을 돕는 도우미 친구들입니다. 치료사는 치료적 근거와 안전, 참여자의 현재 상태와 치료 목표를 바탕으로 매체와 작업 구조를 제안합니다. 한 사람의 선택과 속도가 살아 있는 관계 안에서 표현은 자기 모습을 찾아갑니다.

손과 몸이 먼저 표현하고, 언어가 천천히 따라옵니다

논문이 다루는 또 하나의 관점은 피질과 변연계의 상향식·하향식 상호작용입니다. 몸에서 빠르게 일어나는 감각과 정서 반응, 그리고 그 경험을 알아차리고 의미화하는 과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설명입니다.

미술치료에서는 손의 움직임과 매체의 촉감, 화면에 나타난 색과 형태가 말보다 먼저 경험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후 작품을 함께 바라보며 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천천히 언어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견딜 수 있는 범위에서 조절하는 연습이 이미지와 대화 속에서 이어집니다.

저는 이를 몸과 손이 먼저 표현하고, 눈으로 이미지를 바라본 뒤, 언어가 천천히 따라오는 과정으로 이해했습니다. 이 논문의 범위는 미술치료 효과를 직접 검증한 연구와 다릅니다. 논문의 신경과학적 관점을 미술치료의 감각적·성찰적 과정과 연결해 본 저의 해석입니다.

변화는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자랍니다

신경가소성의 관점은 변화가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고 설명합니다. 비교적 안정된 상태에서 새로운 반응을 여러 번 연습하고, 그 경험이 일상으로 이어질 때 낯설었던 길이 조금씩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미술치료에서도 한 장의 그림이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는 순간을 기대하기보다 회기마다 이어지는 작은 경험을 살핍니다. 표현을 시작해 본 경험, 불편한 감각 속에서 잠시 머문 시간, 멈춘 뒤 다시 선택한 순간, 완성된 작품을 누군가와 안전하게 바라본 기억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여기서 일관성은 모든 회기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한다는 의미와 다릅니다. 예측할 수 있는 태도와 안정된 경계를 유지하면서, 한 사람의 현재 상태에 맞게 조율하는 일입니다. 반복적이고 안정적인 경험은 변화가 자리 잡을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치료사의 존재 방식도 치료 장면에 참여합니다

논문에서 다룬 거울뉴런과 정서 전염에 관한 논의는 치료사의 존재 방식으로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치료사의 목소리와 표정, 호흡, 기다리는 태도는 치료실의 정서적 분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치료사가 자신의 반응을 알아차리고 조절하는 능력도 임상적 작업에 포함됩니다.

거울뉴런이라는 개념 하나가 공감이나 치료효과 전체를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신경과학적 기제와 실제 치료관계 사이에는 몸과 기억, 문화, 환경, 상호작용의 역사가 함께 놓여 있습니다. 거울뉴런에 관한 논의는 치료사의 정서조절과 비언어적 소통을 생각하게 하는 하나의 관점으로 신중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을 읽으며 함께 살펴본 한계

강의자료의 비판적 검토에서는 이 논문이 ‘포괄적 리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PRISMA 지침에 따른 체계적 문헌고찰은 아니라는 점을 짚습니다. 문헌 검색과 선정, 질 평가 절차가 충분히 명시되지 않아 근거를 재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열네 가지 원리의 선정 기준과 원리 사이의 위계도 더 설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단일 저자가 구성한 이론적 리뷰라는 점, 자기인용 편향의 가능성, 제안된 원리 전체를 하나의 모형으로 검증한 효과연구가 없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진단과 증상, 발달 단계에 따른 차이를 세밀하게 살펴보는 후속 연구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경험을 특정 뇌 영역이나 신경회로의 작용으로만 설명하면 한 사람의 삶을 충분히 만나기 어렵습니다. 관계와 기억, 몸의 경험, 문화와 환경, 이미지에 담긴 개인적 의미가 함께 존재합니다. 뇌과학은 이 경험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으로 유용하며, 치료의 모든 장면은 그보다 넓습니다.

나의 생각: 회기가 끝난 뒤에도 치료사의 성찰은 이어집니다

저는 회기가 끝난 뒤 반응작업을 꾸준히 합니다. 치료 장면에서 제 안에 남은 감각과 이미지, 아직 말로 정리되지 않은 반응을 미술 작업으로 다시 바라봅니다. 외부 전문가에게 슈퍼비전을 받으며 제가 무엇을 보았고 어떤 부분을 놓쳤는지, 제 반응이 치료 장면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살핍니다.

이 논문을 읽으며 제가 이어 온 반응작업과 슈퍼비전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치료사의 자기조절은 자신의 반응을 구체적으로 보고 표현하며 다른 전문가와 함께 검토하는 반복적인 과정 속에서 자랍니다.

반응작업은 치료 장면을 다시 바라보며 제 경험과 참여자의 경험을 구분해 가는 시간입니다. 슈퍼비전은 혼자 세운 해석에 머물지 않도록 시야를 넓혀 줍니다. 이 성찰이 쌓일수록 다음 회기에서 더 안정적으로 머물고, 한 사람의 표현 속도를 존중하며, 치료관계를 세심하게 살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뇌과학의 언어보다 오래 남은 것

이 논문을 미술치료와 연결해 읽으며 제게 오래 남은 것은 안전한 관계 안에서 감각과 정서를 알아차리고, 이미지로 표현하며, 그 경험에 의미를 더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과정은 한 번의 깨달음과 함께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습니다.

치료사는 그 곁에서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참여자에게 맞는 속도와 매체를 함께 찾아갑니다. 미술치료의 가치는 관계 안에서 안전과 조절, 표현의 경험이 실제로 어떻게 쌓이는지를 세심하게 바라볼 때 더 충실하게 드러납니다.

미술치료의 의미와 진행 과정은 미술치료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 맞는 상담 가능 여부는 첫 상담 예약에서 문의해 주세요.


참고문헌

  • Faustino, B. (2022). Minding my brain: Fourteen neuroscience-based principles to enhance psychotherapy responsiveness. Clinical Psychology & Psychotherapy, 29(4), 1254–1275. https://doi.org/10.1002/cpp.2719
고은별

고은별

ACT ART CENTER 대표 · MA (박사과정)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미술과 심리치료를 연결하는 전문가. 예술적 감수성과 임상적 통찰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심리적 성장을 돕는 미술치료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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