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은 꺼내는 순간 흩어질 것처럼 느껴집니다. 슬픔은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막막하고, 화는 손에 잡히지 않은 채 안에서 계속 움직입니다. 아직 이름을 찾지 못한 감정도 있습니다.
이럴 때 저는 마음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컨테이너’를 떠올립니다. 지금의 감정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고, 그 무게를 함께 견디는 자리입니다. 미술치료에서는 공간과 치료자의 태도, 작품과 매체가 함께 이 자리를 만들어 갑니다.
위니컷의 홀딩은 마음에 바닥을 만들어 줍니다
도널드 위니컷(Donald W. Winnicott)은 아이가 정서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환경을 설명하며 홀딩(holding),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 충분히 좋은 환경을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홀딩은 실제로 품에 안는 돌봄을 포함하며,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받쳐 주는 환경 전체로 넓어집니다.
예측할 수 있는 돌봄과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 필요를 세심하게 알아차리는 태도는 마음에 바닥을 만들어 줍니다. 관계가 잠시 흔들린 뒤 다시 연결되는 경험도 충분히 좋은 환경의 일부입니다. 그 안에서 사람은 자기 감정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힘을 천천히 키워 갑니다.
위니컷이 설명한 잠재적 공간(potential space)은 내면과 바깥 현실이 만나며 놀이와 창조가 일어나는 경험의 자리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이미지를 만들며 작품과 관계를 맺는 미술치료의 시간도 이 개념과 연결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작품과 매체가 감정이 머무는 자리가 됩니다
한 사람은 작은 상자 안에 종이 조각을 차곡차곡 넣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그릇 안에 점토로 만든 감정의 모양을 모아 둡니다. 커다란 종이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색칠하며 자기만의 경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상자와 그릇, 종이는 미술 표현을 돕는 매체입니다. 손으로 만지고, 옮기고, 덮고, 다시 펼칠 수 있는 구체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마음속에서 크게 퍼져 있던 감정이 작품 안에 자리를 얻으면, 한 사람은 그 감정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이어 갈 수 있는 거리를 만납니다.
치료자는 한 사람의 표현 속도를 살핍니다. 매체를 선택할 때도 치료적 근거와 안전, 현재의 몸과 마음 상태, 치료 목표를 함께 고려해 구조화하거나 제안합니다. 상자를 열어 볼 때와 잠시 닫아 둘 때, 작품 곁에 머물 때와 거리를 둘 때를 함께 조율합니다.
위니컷의 홀딩과 비온의 담아내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컨테이너-담긴 것(container-contained)’과 ‘담아내기(containment)’는 윌프레드 비온(Wilfred R. Bion)의 이론에서 발전한 개념입니다. 비온은 아직 생각으로 다루기 어려운 정서적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고 소화된 뒤,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돌아오는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위니컷의 홀딩 환경은 한 사람을 안정적으로 받쳐 주는 관계와 환경에 초점을 둡니다. 비온의 담아내기는 거칠고 혼란스러운 정서 경험을 받아들이고 다룰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 가는 정신적 과정에 초점을 둡니다. 두 개념은 서로 다른 이론적 뿌리를 지니며, 치료실에서는 한 사람의 마음이 안전하게 머물고 표현되도록 돕는 지점에서 만납니다.
치료실은 작품과 사람을 함께 품는 더 큰 공간입니다
미술치료에서 작품은 감정이 머무는 작은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치료실은 그 작품과 사람을 함께 품는 더 큰 공간이 됩니다. 치료자는 나타난 감정을 함께 바라보며 표현이 자기 속도로 이어지도록 안정된 자리를 지킵니다.
오늘 내 마음에도 담아 둘 곳이 필요한 감정이 있을까요? 그 감정에 색이나 모양을 건넨다면 어떤 모습일지 가만히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작은 종이 한 장, 빈 상자 하나, 손에 편안하게 닿는 매체를 골라 그 마음이 머물 자리를 만들어 봅니다.
마음은 안전하게 담길 자리를 만날 때 자기 모습을 조금씩 보여 줍니다. 저는 미술치료실에서 한 사람의 감정이 작품 안에 자리를 얻고, 관계 안에서 충분히 머물며, 자신의 속도로 표현되도록 곁을 지킵니다.
미술치료의 공간과 관계를 더 살펴보고 싶으시면 성인 1:1 개인 미술치료와 위니컷의 안아주는 환경과 미술치료 글을 함께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이 답한 질문
- Q: 컨테이너는 위니컷의 고유 개념인가요?
A: container-contained와 containment는 비온의 이론에서 발전한 개념입니다. 이 글에서는 위니컷의 홀딩 환경과 비온의 담아내기를 구분하면서 치료실에서 만나는 지점을 살펴봅니다. - Q: 미술 작품도 감정을 담는 컨테이너가 될 수 있나요?
A: 작품은 감정을 색과 형태, 질감으로 옮겨 잠시 머물게 하는 구체적인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치료적 관계와 안전한 환경이 그 경험을 함께 받쳐 줍니다. - Q: 치료사는 매체를 어떤 기준으로 제안하나요?
A: 치료적 근거와 안전, 한 사람의 현재 상태와 치료 목표를 함께 살펴 매체를 구조화하거나 제안합니다. 표현의 속도와 선택을 존중하며 과정을 조율합니다.
참고 문헌
- Winnicott, D. W. (1960/1965). The theory of the parent-infant relationship. In The Maturational Processes and the Facilitating Environment. Hogarth Press.
- Winnicott, D. W. (1971). Playing and Reality. Tavistock Publications.
- Bion, W. R. (1962). Learning from Experience. William Heinemann.
- 작품과 매체를 컨테이너 경험에 연결한 부분은 위니컷과 비온의 개념을 미술치료 장면에 적용한 임상적 해석입니다.

ACT ART CENTER 대표 · MA (박사과정)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미술과 심리치료를 연결하는 전문가. 예술적 감수성과 임상적 통찰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심리적 성장을 돕는 미술치료를 지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