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막히는 순간
트라우마 세션에서 제가 가장 신중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보실 수 있으세요?"라고 여쭈었을 때, 내담자가 입을 열려다 멈추는 그 찰나요. 기억은 분명 있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 상태. 이것은 회피가 아닙니다. 의지의 문제도 아니에요. 신경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반응이에요.
먼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있어요. 이 글은 트라우마 자가 치료 가이드가 아닙니다. 트라우마 관련 미술 작업은 반드시 훈련받은 치료사와 함께 해야 하고, 혼자서 트라우마 이미지를 깊이 파고드는 시도는 재트라우마화의 위험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왜 말이 막히는가', 그리고 '왜 미술이 그 자리에서 도움이 되는가'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브로카가 꺼지는 순간
이 분야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발견은 Rauch, van der Kolk 등(1996)이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에 발표한 PET 스캔 연구예요. PTSD 환자들이 자신의 트라우마 장면을 묘사하는 스크립트를 듣는 동안 뇌 활동을 측정했는데, 결과가 이랬습니다. 언어 산출을 담당하는 좌반구 브로카 영역의 활동이 현저히 감소하고, 반대로 시각·감정 처리와 관련된 우반구 영역은 강하게 활성화됐어요.
van der Kolk가 『The Body Keeps the Score』(Viking, 2014)에서 반복해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 비대칭입니다. 트라우마 순간의 경험은 서사가 아니라 감각 파편으로 저장돼요. 특정한 냄새, 어떤 질감, 누군가의 말투. 이런 파편들이 몸 안에 흩어져 있고, 그것들을 논리적 이야기로 꿰는 좌반구의 기능은 트라우마를 떠올릴 때 잠시 꺼집니다.
그래서 "그때 이야기 해보세요"가 그렇게 어려운 거예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미술이 열어주는 우회로
미술치료가 트라우마 작업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이 신경학적 지도 위에서 분명해집니다. 색을 고르고, 형태를 만들고, 선을 긋는 행위는 주로 우반구와 감각운동 경로를 사용해요. 말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 손과 색은 닿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Schouten 등(2015)이 Trauma, Violence, & Abuse에 발표한 체계적 고찰은 성인 트라우마 대상 미술치료 RCT 6편을 검토했는데, 절반의 연구에서 치료군의 트라우마 증상 감소가 유의미하게 확인됐습니다. 최근에는 Maddox 등(2024)이 Clinical Psychology & Psychotherapy에 더 큰 범위의 메타분석을 내놓았어요. 연구의 질은 아직 중간 수준이지만, 효과의 일관성은 지속적으로 관찰됩니다.
Malchiodi의 『Handbook of Art Therapy』 2판(Guilford, 2012)은 트라우마 인지 미술치료의 실제 기법을 체계화한 대표적인 저작입니다. 제가 훈련 과정에서 가장 많이 펼쳐본 책 중 하나예요.
페이싱이라는 원칙
트라우마 미술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기법이 아니라 '페이싱(pacing)'이에요. 얼마나 천천히, 얼마나 조금씩 접근하는가. 너무 빠르면 재트라우마화가 일어나고, 너무 멀리 돌아가면 회피가 고착됩니다. 그 중간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치료사의 핵심 역할이에요.
실제 세션의 대략적 흐름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허구의 사례가 아니라 일반적 경로입니다.
1단계 — 안전한 장소 그리기
본격적인 작업 전에, 내담자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을 상상해 그려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든, 상상 속 장소든 상관없어요. 이 그림이 이후 작업에서 '심리적 안전 기지'로 기능합니다. 힘든 감각이 올라올 때 언제든 이 그림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감각.
2단계 — 감각의 추상화
트라우마 사건 자체를 재현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때의 '느낌'을 색·형태·질감으로 옮기는 작업을 합니다. 구체적 장면이 아닌 추상적 감각. 이 거리감이 감정에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외부에 놓고 바라볼 수 있게 해줘요.
3단계 — 이야기의 재구성
감각 작업이 충분히 무르익고, 신경계가 안정을 경험한 후에야 서사 작업이 가능해집니다. 이 단계는 몇 달, 때로는 더 오래 걸릴 수 있어요.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 세 단계는 도식적이에요. 실제 치료에서는 오가면서, 때로는 1단계로 돌아오고, 때로는 2단계에서 오래 머물기도 합니다.
혼자서 하면 안 되는 이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어요. 트라우마 이미지나 감각을 혼자서 깊이 시각화하는 작업은 권하지 않습니다. 신경계가 충분히 조절되지 않은 상태에서 트라우마 기억을 꺼내면, 기억이 '처리'되는 게 아니라 '재활성화'될 수 있어요. 이는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대신 혼자 해도 안전한 작업이 있다면, '안전한 장소 그리기' 정도가 그 범위예요. 지금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공간을 간단히 스케치해 보는 것. 그 이상은 전문가와 함께 여는 게 좋습니다.
마치며
트라우마는 흉터 같아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더 이상 지금의 삶을 지배하지 않는 자리로 옮겨 놓을 수는 있습니다. 미술은 그 과정에서 말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 다리를 놓아줘요. 빠르지 않습니다. 안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혼자가 아니어야 합니다.
트라우마 작업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일반 상담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니 초기 상담 예약에서 먼저 현재 상태를 함께 확인하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치료사 소개에서 저희 훈련 배경을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이 글이 답한 질문
- Q: 트라우마를 말로 꺼내기 어려운 이유가 있나요?
A: 신경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Rauch·van der Kolk 등(1996) PET 연구에서 PTSD 환자가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순간 좌반구 브로카 영역(언어 산출)의 활동이 현저히 감소하고, 우반구 시각·감정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 Q: 미술치료가 트라우마에 효과가 있나요?
A: Schouten 등(2015) 체계적 고찰과 Maddox 등(2024) 메타분석에서 시각예술치료가 트라우마 증상 감소에 일관된 효과를 보였습니다. 다만 연구의 질적 수준은 중간 정도이며, 방법론 개선이 진행 중입니다. - Q: 트라우마 미술치료를 혼자 해도 되나요?
A: 권장하지 않습니다. 신경계가 충분히 조절되지 않은 상태에서 트라우마 기억을 꺼내면 '처리'가 아닌 '재활성화'가 되어 증상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안전한 장소 그리기' 정도까지만 혼자 안전하게 가능하며, 그 이상은 반드시 훈련받은 치료사와 함께 해야 합니다.
참고 문헌
- Malchiodi, C. A. (2012). Handbook of Art Therapy (2nd ed.). Guilford Press.
- Malchiodi, C. A. (2020). Trauma and Expressive Arts Therapy: Brain, Body, and Imagination in the Healing Process. Guilford Press.
- Maddox, B. B., et al. (2024). On the effectiveness of visual arts therapy for traumatic experience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Clinical Psychology & Psychotherapy, 31, e3041.
- Rauch, S. L., van der Kolk, B. A., Fisler, R. E., et al. (1996). A symptom provocation study of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using positron emission tomography and script-driven imagery.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53(5), 380–387.
- Schouten, K. A., de Niet, G. J., Knipscheer, J. W., Kleber, R. J., & Hutschemaekers, G. J. M. (2015). The effectiveness of art therapy in the treatment of traumatized adults: A systematic review on art therapy and trauma. Trauma, Violence, & Abuse, 16(2), 220–228.
- van der Kolk, B. A. (2014). The Body Keeps the Score: Brain, Mind, and Body in the Healing of Trauma. Viking.

ACT ART CENTER 대표 · MA (박사과정)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미술과 심리치료를 연결하는 전문가. 예술적 감수성과 임상적 통찰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심리적 성장을 돕는 미술치료를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