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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통해 다시 바라보는 치료의 장면: 《미술 기반 미술치료 슈퍼비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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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통해 다시 바라보는 치료의 장면: 《미술 기반 미술치료 슈퍼비전》을 읽고 블로그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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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 회기를 마친 뒤에도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참여자가 고른 색, 종이 위에 반복해서 그은 선, 작품 앞에서 한참 이어진 침묵처럼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입니다. 치료사는 그 장면을 기억하며 자신이 무엇을 보았고, 어떤 감정을 느꼈으며, 어떻게 반응했는지 돌아봅니다.

Barbara J. Fish의 《미술 기반 미술치료 슈퍼비전: 이미지를 통한 치료적 통찰력 수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하는 책입니다. 슈퍼비전에서 사례를 말로 보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치료사가 직접 이미지를 만들며 회기의 관계와 정서를 다시 살펴보도록 이끕니다.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

이 책은 슈퍼비전의 기본 원리와 미술 기반 슈퍼비전의 역사를 먼저 살펴봅니다. 이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슈퍼비전에 가져온 작품을 다루는 방법, 슈퍼바이저와 수련자 사이의 권력, 고통스러운 사례를 접한 치료사가 받는 영향, 대학원 교육과 졸업 이후의 슈퍼비전, 다학제 슈퍼비전과 종결의 문제를 다룹니다.

특히 오래 머문 부분은 치료사가 회기에 대한 반응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반응미술(response art)입니다. 치료사는 기억에 남은 장면을 재현하거나, 회기 이후 몸에 남은 긴장과 막연한 감정을 색과 형태로 옮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치료사 자신의 경험과 관계적 반응을 성찰하는 자료가 됩니다.

치료사가 만든 이미지에는 치료사의 감정, 기대, 불안, 피로,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함께 담길 수 있습니다. 슈퍼비전은 그 반응을 알아차리고 임상적 판단과 구분해 살피는 자리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며 오래 생각한 것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치료사는 회기에서 무엇을 보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치료사는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보고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오래 붙잡게 되었습니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치료사의 상태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작은 변화가 선명하게 보이고, 어떤 날에는 걱정이 앞서 참여자의 힘을 충분히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이미지를 만들어 보면 말로 정리하기 전의 반응이 조금 더 솔직하게 드러납니다.

저 역시 회기를 마친 뒤 반응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회기에서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이나 감정을 색과 선, 형태로 옮기다 보면 말로 정리할 때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제 반응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제가 무엇에 오래 머물렀는지, 어떤 순간에 마음이 급해졌는지, 관계 안에서 어느 위치에 서 있었는지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반응작업은 참여자의 경험과 치료사인 저의 경험을 세심하게 구분해 살피도록 돕습니다. 꾸준히 작업할수록 회기 안에서 일어난 일을 조금 더 넓고 깊게 바라보는 시선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반응작업은 이미지를 만드는 시간을 넘어, 치료 장면과 제 반응을 함께 통찰하는 시선을 길러가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회기 후 자꾸 떠오르는 색 하나를 넓게 칠해 볼 수 있습니다. 치료사와 참여자의 위치를 점과 선으로 배치해 볼 수도 있습니다. 화면 한쪽에만 무게가 쏠린다면 그 구성이 어떤 관계의 느낌과 닿아 있는지 천천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작품은 질문을 더 정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줍니다.

저에게 미술 기반 슈퍼비전은 임상적 책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반응을 세심하게 점검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참여자의 작품을 존중하면서 치료적 관계 안에서 일어난 일을 놓치지 않도록 돕는 방법입니다.

미술치료 현장에 가져오고 싶은 질문

이 책을 읽고 나면 회기 기록 옆에 몇 가지 질문을 더 적어 보고 싶어집니다.

  • 회기 이후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 참여자의 작품을 보며 제 몸에는 어떤 감각이 생겼나요?
  • 제가 서둘러 해결하거나 보호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 참여자의 표현을 바라볼 때 제 경험이 어떻게 함께 떠올랐나요?
  • 다음 회기에서 조금 더 기다려 볼 부분은 무엇인가요?
  • 슈퍼비전에서 함께 살펴야 할 윤리적·관계적 쟁점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바로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이미지가 도움이 됩니다. 색을 고르고 선을 긋는 동안 생각과 감정 사이에 작은 여백이 생깁니다. 그 여백 속에서 치료사의 경험과 참여자의 경험을 구분하고, 다음 회기에 필요한 태도를 다시 정돈할 수 있습니다.

수련자와 숙련된 치료사 모두에게 필요한 책

슈퍼비전은 경력 단계에 따라 질문과 방식이 달라지는 지속적인 성찰의 자리입니다. 경력이 쌓인 뒤에도 치료사는 복잡한 사례, 기관의 요구, 역할의 경계, 종결의 감정과 계속 마주합니다. 숙련된 치료사에게도 자신이 익숙하게 사용하는 개입을 돌아보고, 관계 속 권력과 영향을 점검할 자리가 필요합니다.

이 책은 슈퍼비전의 초점을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가”에서 “치료 관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나는 그것을 어떻게 경험했는가”로 넓혀 줍니다. 평가받는다는 긴장이 큰 수련자에게도 조금 더 안전한 성찰의 통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지는 결론이 아니라 대화를 여는 자료입니다. 슈퍼바이저는 수련자의 표현을 존중하면서 치료적 근거, 안전, 윤리, 관계의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책을 덮으며

좋은 슈퍼비전은 치료사가 자신이 본 것과 느낀 것을 더 정직하게 바라보도록 돕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 기반 미술치료 슈퍼비전》은 그 성찰에 미술이라는 언어를 다시 돌려줍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회기의 흔적을 이미지로 만나고, 그 이미지 앞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일. 저는 그 시간이 치료사의 감각을 섬세하게 다듬고 참여자를 더 온전하게 만나는 준비가 된다고 느꼈습니다. 치료사의 성찰이 깊어질수록 다음 회기에서 건네는 질문과 기다림도 달라집니다.

책에서 다룬 미술 기반 슈퍼비전과 함께 ACT ART CENTER의 치료사 소개미술치료 안내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서지 및 내용 확인


책 정보

  • 제목: 《미술 기반 미술치료 슈퍼비전: 이미지를 통한 치료적 통찰력 수련》
  • 원제: Art-Based Supervision: Cultivating Therapeutic Insight Through Imagery
  • 저자: Barbara J. Fish
  • 역자: 정여주, 박인혜, 장정자, 조정은, 홍우리
  • 출판사: 학지사
  • 출간일: 2020년 10월 20일
  • ISBN: 978-89-997-2214-1
미술 기반 미술치료 슈퍼비전 한국어판 책 표지
《미술 기반 미술치료 슈퍼비전》 한국어판 표지 · 이미지 출처: 알라딘
고은별

고은별

ACT ART CENTER 대표 · MA (박사과정)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미술과 심리치료를 연결하는 전문가. 예술적 감수성과 임상적 통찰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심리적 성장을 돕는 미술치료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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