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애려 할수록 커집니다"
불안으로 상담실 문을 두드리시는 분들께 제가 처음 드리는 말씀이 있어요. "오늘 우리의 목표는 불안을 없애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 당황하신 표정으로 저를 보세요. 불안이 괴로워서 왔는데 없애지 않겠다니요.
그런데 잠깐, 한번 생각해 보실래요. 지금까지 불안을 없애려고 시도했던 모든 방법 — 생각하지 않으려 하기, 상황 회피하기, 술이나 일로 주의 돌리기 — 이것들이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으셨나요. 대개는 잠깐 괜찮아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더 강해져서 돌아옵니다. ACT에서는 이 패턴을 '경험 회피'라고 부릅니다. 불안을 없애려는 그 시도 자체가 불안을 먹이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저는 방향을 바꿉니다. 없애는 대신, 보이게 만듭니다.
불안에 형태를 주는 작업
제가 상담에서 자주 꺼내는 질문이 있어요. "지금 느끼는 불안이 모양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색은요? 크기는요? 어디에 있어요?"
어떤 분은 가슴 위에 올라앉은 검은 구름을 그리셨습니다. 또 다른 분은 뱃속에서 뱅글뱅글 도는 붉은 소용돌이를 표현하셨어요. 형태도 색도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그리는 순간, 그분들의 어깨가 아주 살짝 내려갑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종이 위에 나타나면서 어딘가 숨이 조금 트이는 거예요.
이 과정이 ACT의 '인지적 탈융합'과 맞닿아 있습니다. 불안이 종이 위에 나타나면, 우리는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돼요. '내가 불안하다'에서 '내 앞에 불안이 있다'로 관계가 바뀝니다. 이 미묘한 전환이 불안의 지배력을 자연스럽게 약화시킵니다.
근거는 어디쯤 와 있나
연구 근거도 꾸준히 쌓이고 있어요. Huang 등(2025)이 Journal of Psychiatric and Mental Health Nursing에 발표한 메타분석은 성인 불안에 대한 시각예술치료의 효과를 35개 RCT, 3,167명으로 검토한 결과 큰 효과 크기(SMD = −1.31)를 보고했습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메타분석(2024)에서도 유사하게 유의미한 감소가 확인됐고요.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느끼는 최근 흐름은 '폴리베이갈 이론(polyvagal theory)'을 미술치료에 접목하려는 시도예요. Porges의 이론은 자율신경계의 작동을 세 단계(배쪽 미주신경·교감신경·등쪽 미주신경)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이 관점을 예술치료에 결합한 최근 문헌들(예: Frontiers in Psychology, 2024)은 예술 활동이 신경계 조절의 '안전 신호'로 작동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합니다. 아직 엄정한 인과 증거가 확립된 단계는 아니지만, 임상 감각과는 꽤 잘 맞아떨어집니다.
몸으로 느끼는 불안, 손으로 다루기
불안은 추상적 개념이 아닙니다. 몸에 삽니다. 가슴이 조이고, 목이 막히고, 손이 떨리죠. 그래서 저는 불안이 많은 분께 찰흙이나 점토 작업을 자주 권합니다.
찰흙을 주무르고, 눌러보고, 찌그러뜨리는 반복 동작에는 고유한 힘이 있어요. 손끝의 저항감, 차가움, 점점 따뜻해지는 체온. 이런 감각이 뇌간을 통해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킵니다. 말로 "진정하세요"라고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층위의 조절이에요.
저는 이 작업을 할 때 "완성하려고 하지 마세요"라고 꼭 말씀드려요. 찰흙은 형태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만지는 그 과정이 치료입니다.
집에서 혼자 해볼 수 있는 세 가지
상담실이 아니어도 시도하실 수 있는 간단한 방법들을 정리해 드릴게요. 심한 공황 발작이 진행 중일 때는 당연히 전문가의 도움이 우선이지만, 일상적인 불안에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불안의 초상 그리기 — 종이 한 장, 색연필 몇 자루. 지금 이 순간의 불안을 '모양·색·크기'로 그려 보세요. 잘 그리려 하지 마시고요. 5분.
- 천천히 선 긋기 — A4 한 장 위에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한 번에 한 선씩. 천천히. 숨을 내쉬는 박자에 맞춰서요. 10분.
- 찰흙·밀가루 반죽 주무르기 — 꼭 찰흙이 아니어도 됩니다. 주방에 밀가루 반죽이 있다면요. 눈을 감고 5분만 만져 보세요. 형태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마치며 — 불안과 다른 관계 맺기
불안은 없애는 대상이 아니라 대화하는 대상입니다. 너무 이상적인 말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요,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건 이겁니다. 불안에 형태를 주기 시작한 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의 크기보다 불안과의 거리가 달라져요. 불안이 여전히 있는데, 더 이상 삶 전체를 잠식하지 않는 상태. 그게 ACT가 말하는 '심리적 유연성'의 한 장면입니다.
혼자 해보시다가 막히는 지점이 있으시면 첫 상담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ACT와 미술치료가 어떻게 만나는지도 참고하실 수 있어요.
이 글이 답한 질문
- Q: 불안은 왜 없애려 할수록 커지나요?
A: ACT에서는 이 패턴을 '경험 회피(experiential avoidance)'라고 부릅니다. 불안을 피하려는 모든 시도 — 생각 억제, 상황 회피, 주의 돌리기 — 가 단기적으로는 편해지지만 장기적으로는 불안을 강화합니다. 회피 자체가 '불안은 위험하다'는 학습을 반복시키기 때문입니다. - Q: 불안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어떤 효과가 있나요?
A: 그림을 통해 '내가 불안하다'에서 '내 앞에 불안이 있다'로 관계가 바뀝니다(ACT의 인지적 탈융합). Huang 등(2025) 메타분석(35개 RCT, 3,167명)은 시각예술치료가 성인 불안에서 큰 효과(SMD = −1.31)를 보였다고 보고했습니다. - Q: 집에서 혼자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A: 세 가지를 권합니다 — (1) 불안의 초상 그리기 5분, (2) A4 위에 천천히 선 긋기 10분(호흡 박자에 맞춰), (3) 찰흙·밀가루 반죽 주무르기 5분(형태 만들지 않음). 심한 공황 발작 시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우선입니다.
참고 문헌
- Hayes, S. C., Strosahl, K. D., & Wilson, K. G. (2012).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The Process and Practice of Mindful Change (2nd ed.). Guilford Press.
- Huang, Y., et al. (2025). The effects of visual art therapy on improving anxiety symptoms in adult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ournal of Psychiatric and Mental Health Nursing.
- Kaimal, G., Ray, K., & Muniz, J. (2016). Reduction of cortisol levels and participants' responses following art making. Art Therapy, 33(2), 74–80.
- Porges, S. W. (2011). The Polyvagal Theory: Neurophysiological Foundations of Emotions, Attachment, Communication, and Self-Regulation. W. W. Norton & Company.
- Shella, T. A. (2018). Art therapy improves mood, and reduces pain and anxiety when offered at bedside during acute hospital treatment. The Arts in Psychotherapy, 57, 59–64.
- Van de Kamp, M. M., et al. (2024). A theoretical exploration of polyvagal theory in creative arts and psychomotor therapies for emotion regulation in stress and trauma. Frontiers in Psychology, 15, 1382007. · PMC 전문

ACT ART CENTER 대표 · MA (박사과정)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미술과 심리치료를 연결하는 전문가. 예술적 감수성과 임상적 통찰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심리적 성장을 돕는 미술치료를 지향합니다.